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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placesƨǝɔɒlq-noИ》 LINK 전시 전경, 서교예술실험센터, 서울, 2021, 사진: 박승만
Non-placesƨǝɔɒlq-noИ, Installation view, Seogyo Art Center, Seoul, 2021, Photo by Seungmann Par
Non-placesƨǝɔɒlq-noИ, Installation view, Seogyo Art Center, Seoul, 2021, Photo by Seungmann Par
《Non-placesƨǝɔɒlq-noИ》
2021. 10. 16 - 10. 29
서교예술실험센터 (서울 마포구 잔다리로6길 33 1층 전시실)
폐허를 끌어안고, 춤 : 통과하고, 굴절되고, 전복하는 미술
이희단 X 장우주
글_ 박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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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도래 이후 현재의 미술은 무엇으로 있는가? 이러한 견지에서 미술의 동시대성을 그려내려는 시도는 무수하게 이어져 왔지만 여전히 가능태로 남아있다.
현시점의 미술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 이후 현실 사회주의의 종말과 글로벌 자본주의에 의해 배태되었으면서도, 미술은 이들을 비판적으로 다루며 자라났다.
그리고 일련의 거대한 기류 변화 속에서 웹의 창안과 첨단기술의 발달로 과거에는 없었던, 온라인 네트워크와 정보 시스템이라는 새 생명과 미술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했다.
전시 《Non-placesƨǝɔɒlq-noИ》에서 이희단과 장우주는 신자유주의와 디지털화된 세계에 발 딛고, 각자가 겨냥하는 견고한 이데올로기를 해체하는 데 관심을 둔다.
언뜻 보면 이들 작업이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둘러싼 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뤄온 여타 미술의 언어들과 궤를 같이하리라 생각할 수 있으나, 디지털 매체 이후의 상황 안에서,
다시 말해 디지털 매체가 민주주의와 글로벌 자본주의 모두에 기여한다는 사실을 끌어안고, 현 체제에 균열 내기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결을 달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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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단은 그간 매체를 넘나들며 데이터화된 세계 안에서 언어로 대변되는 구성된 주체를 해체하는 데 집중해 왔다.
가령 작가는 리플렛 작업 <핑키윙키 아카이브>(2021)와 퍼포먼스 <핑키윙키 볼륨 2: ‘베이비’>(2019)에서 이미 변질된, 대중매체 속 델마와 루이스와 같은 동성애-우정의 캐릭터로서 ‘핑키’와 ‘윙키’라는 가상의 인물을 창조하고,
이들의 죽음이 결국 데이터화된 세계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지점에서 새로운 비-인간적 유기체 탄생의 조건을 마련하려 했다.
이번 전시에서 텍스트와 사운드, 포그머신 설치로 구성된
협업을 통해 이를 사운드 작업으로 풀어낸다. 인간의 언어는 기계, 동물의 사운드로 모핑(morphing)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데모의 계보도는 아카이빙된다.
작업은 인간 중심주의적인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반성적 관점에서 제시된 도나 해러웨이의 개념을 강조하지만, 이러한 강조는 기계와 동물의 사운드로 분열하며 결과적으로 원 저자인 도나 해러웨이라는 또 다른 이데올로기를 부정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글로벌 자본주의와 공생하는 매체들을 통과하며 굴절하고, 그렇게 탄생한 혼종-되기의 새로운 계보도는 자신이 태어난 이데올로기적 고향 바깥에 자리매김할 가능성을 얻는다.
이렇게 디지털 매체를 포함한 다매체 환경을 적극적으로 취해 또 다른 혼종을 그리려는 작가의 시도는
작업은 프랑스 마을로 불리는 서래마을을 산책하며 맵핑 포인트를 설정하고, 서로 다른 차원의 정보를 수집해 드로잉-사운드-안무의 형태로 재생산하는 과정을 드러낸다.
이희단이 매체 사이를 통과하는 프로세스 자체를 적극적으로 취해, 혼종이라는 시대의 한 서사를 굴절시키고 그 바깥의 지점에서 이를 탐색할 지반을 모색하는 태도를 취한다면,
장우주는 매체 사이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스펙트럼 전체를 관조하고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처럼 보인다.
장우주의 <스캐닝/다이빙>(2021)은 3D 프린팅을 통해 고전적인 바니타스 정물화를 삼차원 공간에 구현한 작품으로, 전작
시리즈는 코로나 상황에서 전시 오프닝의 다과를 오브제로 대체하며 발생하는 과정을 담는다.
작업은 3D 모델링 파일을 구매하는 모습과 실제 식료품 구매의 과정을 중첩한 영상인
<스캐닝/다이빙>을
그리고 3D로 출력된 오브제는 그 자체로, 혹은 사진이나 영상으로 연출되어 기록될 수 있는 여지를 가진 무궁한 상태로 남는다.
다시 말해 장우주의 작업은 매체 사이를 통과하며 발생할 수 있는 새로운 창조물의 형태를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매체 간의 만남이 가능케 하는 스펙트럼의 느슨한 관계를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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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서두에서 제기한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신자유주의 도래 이후 현재의 미술은 무엇으로 있는가?
마르크 오제(Marc Augé, 1935-)의 ‘비장소’(non-place) 개념을 담은 전시 《Non-placesƨǝɔɒlq-noИ》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이희단과 장우주의 응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비장소는 공항, 대형쇼핑몰, 멀티플렉스 영화관 등 ‘이동’으로만 존재하는, 자본에 의한 스펙터클의 논리가 작동하는 공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관계, 역사성, 고유한 정체성이 부재한다는 비장소만의 특성으로부터 정치성과 전복의 잠재성 또한 발생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이희단과 장우주의 작업은 이미 전 지구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의 내부를 취해서 이들에 대응한다.
이러한 과정은 글로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각각에 기여할 가능태로서 디지털 매체 이후의 상황을 품에 안고 추는 춤이다. 이들이 겨냥하는 대상은 각각이 운용하는 매체를 통과하며 굴절되고, 새로운 무언가로서 힘을 얻는다.
할 포스터(Hal Foster, 1955-)는 신자유주의 조건 아래 동시대의 아방가르드의 가능성을 취리히 다다의 무언극의 ‘모방’ 전략에서 찾으며, 주어진 질서에 내재하는 균열의 흔적으로부터 출발하기를 강조한다.[1]
그에 의하면 이들은 ‘자본주의 쓰레기통’의 무정형(formlessness)을 취하는 자로, 이미지와 텍스트의 무차별적인 확산에 일관된 형식(form)을 부여하고, 동시대 삶의 위태로운 조건을 유형의 것으로 만들어 다른 미래를 가리키는 데 동참하는 자다.
이희단과 장우주의 작업은 통과하고 굴절되면서, 현재를 품에 안고 전복의 힘을 얻는다. 《Non-placesƨǝɔɒlq-noИ》는 폐허를 끌어안고 추는 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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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al Foster, Bad New Days: Art, Criticism, Emergency, London: Verso, 2015